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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을 근거로 20세기 초반 30년간 활발했던 일단의 화가를 지칭한다. 종종 "미국 인상파화가"로 불리는데, 그들은 지역적 특성을 지녔고, 인물화에 더욱 보수적인 접근으로 인상주의 화풍을 도입했고 서구미술사의 전통을 중히 여겼다. 그들이 선호한 주제는 품위있는 것으로, 인물화, 풍경화, 실내의 여인들이 주로 대상이었다.  사전트, 모네, 베르메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주축이 된 화가는 Edmund C.Tarbell, Frank Weston Benson, William McGregor Paxton들로 모두 아카데미 쥘리앙 출신이고 보스톤 뮤지엄 미술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들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보스톤 지역 현대미술에 보이고 있다.

▪보스톤의 화가이자 교육자 윌리엄 모리스 헌트는 파리 방문 후 보스톤 유지들에게 밀레, 모네, 르느와르 등의 그림에 투자하라 권했고, 그 영향으로 보스톤에서 1911년 미국에서는 최초로 모네전이 열렸다.  타벨, 벤슨, 팍스톤은 모두 뮤지엄 학교 출신으로 특히 타벨의 역할이 커서 "타벨라이트"라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은 인상파, 또는 바비종파의 풍경그림을 그렸고, 네덜랜드풍의 실내의 여인들 그림을 그렸다.  또한 사전트 양식의 인물화나 정물화도 즐겨 다뤘다.

쟁반의 아침식사.  엘리자베스 팍스톤.  1910

9월의 오후.  죠셉 드캠프.  1895

한 잔의 차.  릴리언 헤일. 1909

이런 영향속에서도 보스턴학파는 자신들의 지역적 특성을 간직했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는 "유럽 미술의 후예들이 더 이상 유럽의 분위기를 닮지 않은 새로운 부류의 화가들이 나타났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테크닉의 숙련을 중요시하고, 정확한 시각적 재현, 고전적 미를 중시하며, 동시에 당시 매우 모던한 거친 붓질을 프랑스로부터 도입했다.  죠셉 드캠프, 필립 레슬리 헤일, 릴리언 헤일, 죤 죠셉 아네킹, 그레첸 로저스, 알드로 히바드, 프레드릭 포터 빈튼, 허먼 더들리 머피, W. 레스터 스티븐스 및 타벨의 스승 에밀 오토 그런만도 이 학파에 속했다.

▪오늘날에는 보스톤학파가 전통적 화풍으로 보이지만, 당대에 그들은 대담한 인상주의적 표현으로 아카데미의 비난을 받았다.  곧 그들은 인정을 받고 1930-40년에 보수적인 보스톤 예술사회에서 미학적인 지배를 했다.  장인정신과 전통적인 미적가치에 도전하는 그들의 헌신은 존경을 받았다.

브렉퍼스트 룸에서.  에드문드 타벨 1902-03

보스톤학파는 부유층의 그림을 주문받아 그렸기에, 현대에 와서는 상류층에 치우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일례로 타벨의 "브렉퍼스트 룸에서(위)"를 보면; 하인들이 창이나 문쪽에 그려져 거리감을 두는 효과라고 본다.  혹 그들이 주요인물로 등장해도 사회적 지위가 드러난 일종의 소유물로서 다뤄진다고 지적하기도 한다.(Elizabeth O'Leary의 19세기 미국미술에 나타난 하인들.)

털모자의 여인.  1915. 그레첸 로저스 작.

 
미술사가들은 보스톤이 특히 여성화가들에게 관대했다는 평이다.  타벨은 그레첸 우드먼 로져스가 천재적이라 칭찬했고, 릴리안 웨스콧 헤일 등 여성작가들도 적극적인 화가였다.  그러나 이들 여성작가를 포함해 보스톤학파의 그림에 표현된 여인들은 주로 가사일에 몰두하거나 집안에 국한되어 있는게 반 여성주의라고 하는 비평도 있다. (글, 그림 출처 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