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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에버렛 쉰

JamieLP 2019. 2. 9. 02:00
<에버렛 쉰 Everett Shinn: 1876-1953>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애쉬캔학파 일원이자 "8인회"에도 잠시 속했다.  뉴욕, 런던의 도심풍경 및 극장, 개인 저택의 벽화로 유명하다.  거친 사실주의에서 장식적인 로코코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그렸다.

1901년 자화상, 목탄화

뉴저지 태생으로 부모는 농부였다.  쉰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고, 15세에 필라델피아 학교에서 미캐니컬 드로잉을 배웠다.  17세에 필라델피아 프레스에서 삽화가로 일했다.  뉴욕으로 이주하며 도시 풍경화가로 알려졌고.  1933년까지 4번 이혼하여 타블로이드 루머에 자주 올랐다.  쉰은 경제으로 성공한 화가였으나 경제공황 이후 타격을 받았다.  1937년부터 1953년 폐암으로 사망시까지 쉰은 혁신적인 그림으로 상도 여럿 받고 전시회도 많이 가졌다.  씨오도 드레이저의 1915년 소설 "천재"의   주인공 천재화가가 쉰이었다 하고, 미술사가 샘 헌터는 그를 "사실주의화가 중 멋쟁이"라 창했다고.

▪쉰은 다른 애쉬캔 화가와 마찬가지로 신문의 삽화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던(나중에는 사진술의 발달로 사양화됨) 전성기에 화가로서의 소양을 키웠다. 그는 유수의 잡지사 하퍼, 라이프, 배너티페어 등에서 성공적인 삽화가(부인도 함께)로 일하며 돈도 많이 벌었다.  1900년 쉰 부부는 유럽에 갔는데, 이때 쉰은 인상주의와 유럽의 극장 묘사예술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쉰은 파리에서 도미에르, 드가, 로트렉을, 런던에서 Walter Sickert를 보고온 듯, 그의 그림에서 이들 화가의 흔적이 강하다.  특히 특이한 구도의 무대, 인물의 배치, 관객이 배경으로 나오는 등 발레, 배우, 마술사의 그림은 드가와 흡사하다(아래의 하얀 발레).  쉰 자신이 공연을 즐겼다는데, 그의 표현은 감각적이고 생생하다.

하얀 발레.  1904

▪쉰의 필라델피아 시절, 다른 애쉬캔학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선배화가 헨라이의 스튜디오에서 모여 지적 소양을 닦고 "목탄화 클럽(피크때 38명 회원)"을 형성해 누드화 스케치를 했다.  이때 고급한 미술문화에서 벗어나 도시 빈민들의 진솔한 삶을 주제로 하자는 새로운 생각이 애쉬캔운동으로 나타난다.  뉴욕에서의 쉰은 사람들의 법썩대는 삶, 드라마틱한 사건, 화재, 도시의 싸움 등에 매료되어 이즈음 파스텔화를 많이 그렸다. 

뉴욕 21가의 겨울.  1889.  파스텔

▪쉰은 폭넓은 사교 덕에 배우, 극작가, 건축가, 실내장식가와도 친교가 있었다.  그런 연고로 개인집, 극장 등의 벽화를 여럿 그렸는데 주로 루이 16세의 로코코 스타일 주문이 많았다.  1907년에 연 벨라스코 극장(아래.  지금도 브로드웨이의 연극무대)은 월넛 패널에 티파니 조명, 쉰이 그린 18점의 벽화가 있는 멋진 건물이다.
벨라스코 극장.

1908년 쉰과 다른 7화가가 맥베스갤러리 에서 연 획기적인 "8인회" 전시회는 결국 국가적인 관심을 얻게된다.  이때 그가 전시한 "곡마장, 런던"은 '애쉬칸 작품 중 최고(미술사가 밀톤 브라운)'라는 호평을 받았고 가장 많이 복사된 쉰의 작품이 되었다.
곡마장, 런던.  1902

▪쉰은 1913년 "8인회"의 아모리 전시회에 불참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반모더니스트였고, 피카소나 마티스를 경멸했다. 일생 재현의 미술가였던 그가 새로운 모더니즘을 거부한 탓에 쉰은 사후 미술사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1910-20년대에 그는 거꾸로 부셰나 와토 말기풍의 쉽게 그려지고 상업적인 그림 시장을 개발했다.  쉰이 플라자 호텔 바에 그린 벽화(아래 사진)는 핸썸(마차)택시와 개스등이 보이는 1940년대를 재현하는 향수적인 의도를 보인다.

▪1910-37년 사이에 쉰은 단 한 번의 전시를 했을뿐인데, 1937년 휘트니 뮤지엄의 "뉴욕 사실주의화가전"에는 쉰도 참여했다.  그것은 당시로선 스러진 "애쉬칸 화파"의 주요한 재결합이었다.  1940년대에 쉰의 그림은 여러 뮤지엄에 전시되었다.  그는 생전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했으나 4번의 이혼과 다수의 연인들 사이에 많은 돈을 썼고 생애 말에는 궁핍했다 한다.

▪에버렛 쉰은 8인회 멤버 중 가장 젊었다.  8인회와 애쉬캔학파로 활동했지만 사실 그의 개인적 비젼은 그 화파와 사뭇 달랐다.  개인적 친밀도가 강했던 8인회 멤버들과 쉰은 관계도 서먹했다.  훗날 슬로운은 "쉰은 8인회에 우연히 들어왔다"라 표현했다.  쉰의 상류지향적 라이프 스타일과 실내장식미술은 사회주의자인 슬로운에게는 눈에 가시같았으리라.  그럼에도,  20세기 초 미국 도시의 삶의 단면을 포착한 쉰의 사실주의적이고 낭만적인 화폭은 뛰어났고, "오케스트라 박스(아래)처럼 생생한 공연예술의 이미지를 미국회화사에 남겼다.(글 출처, Wiki)

오케스트라 박스(The Orchestra Pit: Old Proctor's Fifth Avenue Theater)  1907

브로드웨이 늦은 오후, 마티네 후,  189

 중국식당.  1899

싸움.  1899

말이 끄는 버스.  1899

올나잇 카페.  1900

바 룸에서의 싸움.  1900

플레쉬만의 빵사는 줄.  1900

쿠퍼 스퀘어.

파리의 겨울.  1900

뉴욕시 부두.  1900 파스텔

파리, 마티네 야외공연.  파스텔.  1902

Keith's,  Union Square  1902-06

스페인 뮤직홀.  1902

34가.

In the loge.  1903

윈도우 쇼핑.  1903

줄타는 사람.  1904.  파스텔

토요일 밤.  1905.  수채화

무대장면.  1906

24가의 화재.  1907

파리의 무대.  1907

밤의 삶, 사고.  1908

실직, 실업자 소식.  1908

시사풍자극(Revue레뷰).  1908

윅포드에서의 해수욕.  로드 아일랜드.  1909

누드.  1910

발레 리허설.  1910

발레댄서.  1911

Vaudeville 댄서.  1912

욕조안의 여인.  1903

퇴거.  1904

무대 위 여인.  1906

남자 광대와 여자 무용수.  1909

모피옷의 워커 부인.  1910

5th 애버뉴.  1910. 파스텔

캔필드 도박장.  1912.  구아슈

일본 등불을 든 여인.  1912

파티를 위해 차려입은 두 소녀.  1914

보니 글래스.  1915

배너티페어 1916, 6월 표지.

Zaida Ben-Yusuf이 찍은 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