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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써 B. 데이비스 Arthur Bowen Davies: 1862 –1928>

"미국의 아방가르드 화가로 미국 모던아트의 강력한 대변자."

▪뉴욕 유티카 태생.  15세때 허드슨강학파의 순회 전시회를 보고 강한 영향을 받았다.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했고, 전업화가가 되기 전 잡지의 삽화가로 일했다.

1892년 데이비스는 뉴욕 최초의 여의사중 하나였던 메리웨더와 결혼했다. 그녀의 가족은 만약을 대비해서 가난한 화가 데이비스에게 혼전계약서에 사인하라 했다. 한편메리웨더는 일찍 결혼을 했다가 남편(마약과 도박 중독자)을 죽인 과거가 있는데 이를 속였다. 데이비스는 내성적이고 은둔적인 사람으로 심지어는 친구를 마주쳐도 피해 갈 정도였다는데, 1928년 그가 이태리 휴가에서 급사함으로써 그의 오랜 비밀이 밝혀졌다.  즉, 그에게는 부인이 둘, 각각의 가정에 자녀가 있었다.

유니콘:전설, 조용한 바다.  1906

▪결혼 후, 데이비스의 환상적 주제의 그림은 좋은 호응을 받았다.  유럽 방문으로 네덜랜드 명화를 접하고 코로와 밀레를 좋아하게 되며 그의 색감이나 붓터치도 세련되어갔다.  1920년대 데이비스는 유명한 아트딜러 맥베스를 통해 비싼 값에 그림을거래했고, 필립스같은 주요 콜렉터가 그의 그림을 많이 수집했다.  데이비스의 천상의 인물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유니콘(위)"이다.

데이비스는 팔인회(8인회)의 일원으로 1913년 아모리 전시회를 주관했다.  그는 당시 화가들 중 모던아트에 관해 가장 지식이 많다 알려져, 뉴욕 부자들의 현대미술 구매에 조언자로도 활약했다. 그들 중 Lizzie P. Bliss와 Abby Aldrich Rockefeller는 훗날 Museum of Modern Art를 창설하는데, 데이비스가 선별한 작품들이 그 주축을 이뤘다.

▪데이비스는 조용히 동료화가들을 도운 매우 관대한 인물이었다.  조각가 쟌 플라나간을 아사에 가까운 궁핍에서 도운 것도, Marsden Hartley의 유럽여행을 도와 그의 커리어에 획기적인 단계를 마련해주고, 자신이 유망주라 믿는 Rockwell Kent같은 화가는 자신의 딜러에게 적극 천거했다.  그러나 데이비스에게는 적도 있었다.  특히 그가 아모리 전시회를 추진할 때 유럽의 큐비즘, 포비즘, 퓨쳐리즘을 적극 포용했는데, 당시 현대미술에 소극적이던 8인회의 리더 헨라이 등은 다소 경멸받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미술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었고, 그 흐름에 뒤쳐지는 화가에게 가차없었다.

▪아모리 전시에 발표된 공식발표문에서 데이비스는 밝혔다.  "유럽의 모더니즘 작품을 전시함에 있어 우리 조직위는 전혀 선전할 의도가 없다.  어느 단체에 논쟁을 일으키고자 함도 아니다...물론 논쟁이 일겠지만, 그것은 우리 조직위가 어떤 입장을 취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교묘하게 위장된 언어로 데이비스는 미국에 가장 급진적인 현대미술을 들여온 자신들이 단지 미국 관람자들에게 냉정한 관람의 경험을 제공할 뿐인 것이라 밝혔다.  실제로는 데이비스나 칸은 이 대담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문화적 환경을 확실히, 영구히 바꿔놓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아써 데이비스는 미국 미술사에서 특이한 예이다.  자신은 서정적이고 보수적인 작품을 그렸지만, 취향은 진보적이고 타인의 실험에 관대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그는Alfred Maurer, Marsden Hartley, 유럽의 세잔과 Brâncuși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미술사가 밀톤 브라운은 썼다.  "그의 초기작품은 토날리스트와 휘슬러의 산물로, 그는 독특한 장식적인 스타일을 개발했다.  그는 완전히 절충적이다." 그는 그리이스에서 보티첼리, 독일 화가 뵉클린, 또 영국의 라파엘전파에서 영향을 받았다.  꿈꾸는듯한 여인과 목가적인 그림으로 그는 종종 프랑스의 샤반느와 비견되었다.  그러한 데이비스가 아모리 전시 이후 마티스의 강렬한 색감, 큐비즘의 단순한 형태에 마음을 연다.  아모리 전시 후 데이비스가 시도한 가벼운 형태의 큐비즘적인 그림들은 우아함은 지녔으나 피카소, 브라크 등의  강렬한 큐비즘 정신은 지니지 못 했다.  1918년경, 모던한 작품 시도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 지친 데이비스는 자신이 명성을 얻었던 초기의 작품 스타일로 돌아간다. 전통주의자이자 비전의 소유자, 이상향을 그린 몽상가이자 모더니즘의 주창자, 아써 데이비스는 이렇게 다양하게 불렸다.

공기, 빛, 파도.  1914-17

춤추는 아이들.  1902.  브룩클린 뮤지엄

바이올린 렛슨.  1892

어디로 가는가. 

호랑이.  1890-99

가을, 매혹적 인사.  1907

풍경 속 누드.  1908

Belle donne.  1909

노는 아이들.  1896

과거의 아이들.  1897

신전의 건설자들.  1890-99

호른 주자들.  1893

매주 토요일.  1895-96

천사같은 아이들.  1900

아이들, 개, 망아지.  1905

이리 카날을 따라서.  1898

꿈의 measure.  1908

바다에 바치는 찬사.  1908

바닷가의 댄서.  1910

네 명의 인물.  1911

산 타는 사람들.  1913

춤.  1914-15

동트기.  1915

아바타

상처받은 자들의 회복.  1917

보다 더 거대한 아침

Earths throat edge.  1920

이태리 언덕 마을.  1925

댄서.  1925

스핑크스

폭포 앞 누드 10명

An antic vision.  1926

황혼의 눈꺼풀

풍경 속 인물들

꽃 따는 사람

골짜기 너머.  일본종이에 파스텔.

가을 나무.  파스텔

베어 아일랜드 등대.  파스텔

푸른 덤불

곤란에 처한 배.  파스텔

저녁 배.  파스텔

언덕의 집.  파스텔

구름이 있는 풍경.  파스텔

푸른 풍경화.  파스텔

이상향.  Elysian fields.  오일.

아써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