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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리온 다보

JamieLP 2019. 2. 13. 03:28
<리온 다보 Leon Dabo: 1864– 1960>

비온 후 1911


▪미국의 토날리스트 화가. 뉴욕 특히 허드슨 강의 풍경화로 유명한데, 그의 캔버스는 땅 바다 구름만 보일뿐 넓은 공간감으로 채워졌다. 전성기의 그는 예술의 대가로 알려졌으며 그의 동생 스캇 다보도 화가이다.

리온 다보의 부친은 미학과 고전학 교수로 1870년 프랑코-프러시안 전쟁을 피해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주했다. 그는 정규 교육 외에 다보에게 라틴어, 불어, 그림을 가르쳤다.  부친의 사망 이후 다보 가족은 뉴욕시로 이주 한다.  재능있는 동생의 미술교육을 위해 리온 다버는 건축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했다.  이후 그는 John LaFarge의 제자가 되었는데 둘은 또한 평생 친구가 된다. 훗날 파리로 간 다보는 에콜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샤반느를 멘토로 삼아 공부한다. 당시는 인상주의가 대세였으나, 레온 다보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그는 뮨헨, 이태리를 여행하고, 런던에서 자기 부친의 제자였던 휘슬러를 만나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1890년 뉴욕으로 돌아온 다보는 벽화를 그리다가, 20세기 초 풍경화로 돌아섰다. 미국 화단에서는 그의 그림을 거절했으나 그는 프랑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 날 다보의 그림은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NGA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걸려 있다.
(리온 다보의 성공은 동생 스캇의 질시를 받았다. 결국에는 형제들이 리온이 스캇의 그림을 모방했다 공격했으나, 뉴욕타임스는 그런 비난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

다보는 당시의 현대미술가들과 동조했다.  1910년 파스텔화가 협회 회장이 되었고,  1913년 아모리전시회의 주요 기획자가 되었다.

캐나다의 밤. 1913. 아모리 전시 출전


1차대전 중 다국어에 능했던 다보는 프랑스로 건너가 사투리나 지방 악센트를 분별하여 독일 스파이를 잡는데 공을 세운다.  심지어는 미국의 스파이 역할도 했다.  1차대전후 다보의 예술적 분출은 사그라든다. 그는 미국 사회가 너무 물질적으로 흐른다 생각하였고, 영적인 특성을 지닌 여성들이  예술을 무관심에서 구할 수 있다 믿어서 명강사로 변신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여러 학교에서 가르쳤다.  1937년 프랑스로 돌아온 다보는 2차대전중 페르낭 레제 등  동료 화가의 그림을 외국으로 빼내는데 일조했다.  전쟁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온 다 보는 프랑스의 풍경화를 그려서 호평을 받았다.  다보는 96세로 맨하탄에서 사망했으나 그 이후로도 그의 그림은 계속되는 관심을 받고 있다.( 글 출처, Wiki)

프로방스 풍경, 1952.  루브르박물관


허드슨 강의 저녁.  1907-8


바닷가.  1900


허드슨강 건너서.  1907

 
호수에 걸린 달.  1907


론다우트, 뉴욕.  1907


허드슨강의 은빛 햇살.  1911


바닷가.  1911


허드슨강의 은빛 광선.  1911


허드슨강, 봄.  1912


녹색화병의 꽃

1933년부터  다보는 풍경화로부터 꽃 정물과 파스텔화로 옮겨 가는데,  오딜롱 르동이나 라투르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그림이라고 호평받는다.

언덕위에서.  1916


허드슨강.  1918


허드슨 강 1948


Talloires 습작.  1939


안개.  Fog and mist


한여름밤.


달 보는 사람들


뉴욕의 새벽, 허드슨강.


밤의 해안, 롱아일랜드


꽃 정물


고요한 항해